간헐적 독서하기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리뷰 - 내게 브로콜리를 사게 하다니.

stykworld 2024. 2. 13. 19:36

책표지에 그려진 따뜻한 색감의 그림에 이끌려 주제가 뭔지 자세히 보지도 않고 고른 책이었다.

 

설마 45가지의 '채소'에 관한 책일 줄이야.

 

나도 채소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땅콩호박을 제외하고는 다 익숙한 품목들이었고, 그래서 이 채소들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지 궁금해졌다.

 

그냥 채소 기르는 방법을 적진 않았을 테니.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는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했던 [채소의 온기]라는 작품을 개정하여 2024년 1월 25일 전자책으로 출간되었다.

 

개정판이긴 하나 따끈따끈한 신작인셈.

 

글을 쓴 작가는 '김영주', 표지 그림을 그린이는 '홍명희'

 

우리에게도 익숙한 재료인 '채소'를 주제로 요리를 하고, 그 채소요리를 먹으면 생각나는 작가의 따뜻한 온기를 품은 추억과 기억들로 이야기는 채워져 있다.

 

-출처 : 밀리의 서재 ORIGINAL


 

식탁 위의 작은 숲 브로콜리

너무도 익숙한 채소인 무,  배추, 고구마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가 멈칫하고 멈추게 한건 바로 브로콜리였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채소가 이거다. 브로콜리.

 

언젠가 뉴스에서 브로콜리는 오돌토돌한 꽃봉오리 같은 모양 때문에 꼼꼼하게 세척하지 않으면 벌레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왠지 그 뒤로는 절대 내손으로 브로콜리를 사거나, 외식을 해도 전혀 손을 대지 않게 되었다.

사실 맛도 그렇게 꼼꼼하게 하나하나 세척해서 먹을 만큼은 아니지 않나?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런데 여기에서 설명하는 브로콜리의 레시피는 왠지 구미가 당겼다. 

 

 

언젠가 한식과 일식을 퓨전으로 하는 조그만 식당에 갔다가 브로콜리가 정말 맛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 중략..

식전 애피타이저로 마요네즈와 된장에 무친 브로콜리가 나왔다. 거기에는 약간의 견과류도 함께 들어 있었는데, 느끼한 듯하면서도 고소한 게 심심한 맛의 데친 브로콜리와 정말 잘 어울렸다.
- 출처 :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page 198.

 

 

 

내가 싫어하는 '채소'이지만 이거라면 왠지 꼼꼼하게 세척하는 것을 감수하고 해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사각거리는 브로콜리의 식감과 마요네즈와 된장의 고소한 맛이 왠지 입에 있는 듯 상상이 되었다.

 

뭐.. 때로는 늦은 밤 먹기에도 크게 부담되지 않고 맥주 안주로도 훌륭하다는 말에 홀딱 넘어간 건 아니다. (아마도.. 아닐..)

 

아무튼! 내 장바구니에는 그날로 브로콜리가 담겼다.  

 

때로는 어둠이 성장을 돕는다, 콩나물

너무도 익숙한 재료 콩나물. 무침이나 국으로 끓여서도 자주 먹지만 사실 마트에서 그냥 편하게 툭 하고 집어오는지라 어떤 과정을 거쳐 자라는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콩나물은 물이 잘 빠지는 시루에 콩을 담고 검은 천을 씌워 빛을 차단 후 물을 뿌려서 키우는데,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지만 온도가 너무 높으면 무르거나 부패하고 너무 낮으면 자라지 않고, 성장 도중 빛을 보면 노란 머리는 푸르게 변하고 질겨지고 영양소도 떨어진다고 한다.

 

즉 적당히 따뜻한 온도와 주기적인 물 공급, 빛 차단이 콩나물의 중요한 성장요건인 것이다.   

 

세상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적당히 가 제일 어려운 거 아닙니까..)

 

우리도 검은 천 아래 콩나물처럼 때로는 어둠을 걷힌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라고 해서 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둠이 걷히고 나면 비로소 식탁에 오르는 콩나물처럼, 어둠 뒤에는 새로운 무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출처 :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page 234.

 

이렇게 어둠 뒤에서도 열심히 자란 콩나물이 결국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쓰이는 것처럼.

그저 어둠인 것 같은 시간에도 꾸준히 성장하며 쌓아가는 내 노력은 결국 다양한 길로 나갈 수 있는 내 능력이 될 거다. 

 

오늘 저녁은 작가님이 올려주신 레시피로 콩나물 밥이나 해볼까.

 

 지나고 보니 알게 된 것들, 노각

책에서 언급된 45개의 채소들 중 잘 모르는 채소가 2가지 있었는데 땅콩호박과 바로 이 노각이었다.

노란색 아니 누런색에 거칠거칠한 표면 게다가 크기도 큰. 

 

당연히 오이와는 다른 신품종인 줄 알았는데 책에서 보니 노각 씨앗의 오이를 곧바로 수확하지 않고 30일 정도 두어 억새지기를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거라고 한다.  

 

잉? 일부러 억세 지길 기다렸다 수확을 하는 거라고? 

 

늙은 오이 노각. 그렇지만 오이가 그저 시간을 견딘다고 해서 절로 노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 중략...
일상도 어쩌면 노각이 익어가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생각보다 꽤 많았던 것처럼.
- 출처 :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page 196.

 

난 늘 느린 아이였다. 열심히는 하는데 결과가 바로 짠! 하고 나타나지도 않고, 오랜 시간이 걸려 겨우 완성시키는. 

그 결과도 눈이 부시게 화려하거나 엄청난 수준은 아니고.

 

노각도 오랜 시간 일부러 기다렸다 수확해 먹지만 사실 결과가 그렇게 화려하거나 선호도가 높진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저 그 시간을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노각 나름 열심히 그 여름의 뜨거운 시간을 잘 버티고난 후 시원하고 아삭한 채소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었다.

 

노각 같은 사람이었구나. 나는.

 

지금도 잘 버티고 있구나. 그 시원하고 아삭함을 위해.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채소 하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온기가 아니라 시원함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낀 채소는 온기 맞았다. 내 마음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온기.

 

이미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채소에서, 익숙한 레시피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고 나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반강제? 적으로 채소를 조금 더 기분좋게 먹게 돼버렸다. 씨익 하고 웃으며. 

 

작가님의 다시 쓰는 에필로그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 

 

 " 그럼 종종 따뜻하시길. 그리고 늘 식지 않는 삶을 이어가시기를."

 

[오늘의 온기를 채우러 갑니다] 는 이런 분에게 추천드립니다. 

- 채소에 대해 읽으며 가볍게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
- 소소한 행복을 찾으시는 분들, 채소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분들. 
- 그리고,  45개 종류 채소와 그 레시피가 궁금하신 분들

 

728x90
반응형

'간헐적 독서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간헐적 독서일기 시작  (0) 2024.02.08